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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예

인간극장 “박가네 부자유친(父子有親)”

(경기뉴스통신) 부모자식인데 이상하게 어색한 사이, 아버지와 아들 사이다.

그런데 가족을 덮친 파도를 헤치며

친구처럼, 전우처럼 가까운 사이가 된 아버지와 아들이 있다.

강원도 정선의 박영철(57) 씨와 박상봉(28) 씨 부자(父子)다.

농업대학을 졸업하고 부농(富農)의 꿈에 부풀어

고향에 돌아온 상봉 씨.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2억 원에 가까운 빚과 부모님의 이혼이었다.

집안을 지키기 위해 농사에 뛰어든 상봉 씨는

곤드레 농사를 지어 빚을 다 갚았고

지금은 여기저기서 찾는, 성공한 청년 농부가 됐다.

맨손으로 시작해 7년 만에 이룬 눈부신 성과는

일 벌이기 좋아하는 아들의 뒤를 따라다니며

도와주고 응원하는 아버지 영철 씨 덕분이다.

하루종일 실과 바늘처럼 붙어 다니며 일하는 부자는

틈만 나면 티격태격하느라 조용한 날이 없다.

두 사람의 일하는 방식이 달라도 너무 다른 까닭이다.

상봉 씨는 효율성을 우선하는 반면

영철 씨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꼼꼼하게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부자는 서로를 의지하고 배려하며 일한다.

그것이 지난날의 불행과 상처를 털어내고

환한 미래를 맞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가족에게 닥친 시련과 역경을 끈끈한 부자유친(父子有親)으로

이겨내고 밝게 웃으며 살아가는 아버지와 아들.

가족의 연대가 느슨해져 가는 시대에

‘가족의 힘’이 얼마나 강한 것인지, 인간극장에서 만나본다.



● 만나면 티격태격...친구같은 부자(父子)

강원도 정선 ‘아우라지’에서 굽이굽이 산길을 올라가면

그림처럼 자리한 봉정리 마을에

농사에 평생을 쏟은 천생 농사꾼 박영철(57) 씨와

떠오르는 젊은 농부, 박상봉(28) 부자(父子)가 산다.

해발 400미터의 청정지역에서 곤드레 농사를 짓는 부자는

실과 바늘처럼 붙어 다니며 틈만 나면 티격태격, 아웅다웅한다.

농사에 관한 생각과 농사 방식의 차이 때문이다.

농업대학을 졸업한 엘리트 농부인 상봉 씨.

항상 ‘어떻게 하면 농사를 효율적으로 지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그는

세월아 네월아 일하는 아버지를 볼 때마다 답답하기만 하다.

한평생 농사꾼으로 살아온 영철 씨에게는 철학이 있다.

‘작은 농작물도 온전한 관심과 정성을 쏟아야 한다’라는 신념이 바로 그것.

섣불리 일을 벌이고 수습은 아버지에게 맡기는

아들의 조급함이 영철 씨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도 두 사람은 서로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든든한 동료다.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밭에 나가는 아버지의 성실함과

곤드레의 판로를 개척하는 아들의 수완은 찰떡궁합이다.



● 가족에게 닥친 시련... 곤드레로 극복하다

학창시절, 공부보다는 노는 데 더 열심이었던 상봉 씨.

농사로 고수익을 올리는 아버지를 보며 일찌감치 농사를 진로로 정해

농업고등학교를 거쳐 농수산대학교에 진학했다.

졸업하고 돌아오면 농사지을 땅을 마련해 주겠다며 아들을 응원했던 영철 씨.

그러나 그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아내가 무리한 빚을 끌어다 쓰고 집을 나가버린 것.

졸업하고 농사지으러 돌아온 상봉 씨를 기다리고 있던 건

땅 대신 2억에 가까운 빚과 부모님의 이혼, 그리고 실의에 빠진 아버지였다.

그 모습이 가슴이 아팠던 상봉 씨는 예전의 활기찼던 아버지의 모습을 되찾아 드리고 싶었다.

고심 끝에 상봉 씨는 아버지께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곤드레 농사를 제안했다.

긴 설득 끝에 시작한 곤드레 농사는 때맞춰 간편한 건강식 열풍이 불면서

생산하는 대로 팔려나갔고, 품질을 인정받아 대기업 계열 가공회사로 납품도 하게 됐다.

부자가 밤낮없이 곤드레 밭에서 지낸 지 5년...

마침내 집안을 옥죄고 가족들이 발목을 붙들던 빚을 깨끗이 청산했다.

그 후로, 부자의 하루는 늘 생기가 넘친다.

비가 온 뒤 땅이 더 굳어지듯, 역경을 이겨낸 부자의 마음속에

그늘이 사라진 대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가득 찬 까닭이다.



● ‘회사원 같은 농부’를 꿈꾼다

장난기 가득한 인상에 특유의 친화력으로 어릴 때부터

주변의 사랑과 인기를 한 몸에 받았던 상봉 씨는 이제 정선군의 명물이다.

전도유망한 차세대 농부로 인정받아 지역에서 맡은 직책만 아홉 가지.

명함은 빼곡하고, 여기저기 부르는 곳도 많다.

농사일만으로도 하루가 빠듯하지만, 자신이 필요한 곳이면 상봉 씨는 어디든 달려간다.

자신의 이름이 ‘받들 봉(奉) 자에, 서로 상(相 )자다.’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그의 본심은 겨우 스물두 살에 농사지어보겠다고 발버둥 치는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준 사람들처럼 자신도 비슷한 처지의 젊은 농부들을 돕고 싶어서다.

그렇게 맺어져 만난 사람들은 상봉 씨의 친구이자 함께 농사짓는 동료가 됐다.

상봉 씨는 그들과 어울리며 새로운 농사와 지금보다 살기 좋은 농촌을 고민한다.

상봉 씨의 꿈은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이면 퇴근하는

‘회사원 같은 농부’이기 때문이다.

영철 씨도 아들의 꿈을 응원하고 있다.

넥타이 매는 직장인이 되기를 바랐던 아들에게

자신이 감당해야 할 짐을 떠안긴 것이 아직도 마음이 편치 않아서다.

아들이 바라는 대로 좋아하는 농사를 수월하게 짓는 농부가 되길 바란다.

티격태격 하면서 숨 가쁘게 달려온 지난 시간을 거름 삼아

새로운 꿈을 키우는 ‘박가(朴家)네’ 부자, 영철 씨와 상봉 씨.

전우애처럼 끈끈한 부자를 통해 희미해져 가는 ‘가족의 힘’을 느껴보자.